MOSFET

FinF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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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핀펫(FinFET, Fin field-effect transistor)

핀(fin)은 지느러미라는 뜻이다. 잠수부들이 착용하는 발갈퀴를 핀(fin)이라 부르며, 중국의 상어 지느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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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e All Around

 

런던에 본사를 둔 Standard Chartered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현재의 신흥국 시장이 향후에도 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Standard Chartered에서는 인도네시아, 터키, 브라질, 이집트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이 모두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2030년에는 세계 10대 경제국 중 7개국이 신흥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30년까지 인도는 두 번째로 큰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 그 때쯤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인도 인구가 2026년에 중국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 GDP 시장이 2010년 20% > 2017년 28% > 2030년을 35%로,

점차 아시아시장 크기(영향도)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에 제공된 IMF의 GDP에 대한 최근 데이터와 비교한 것이다.

표의 오른쪽에 이 두 데이터 세트를 직접 비교할 경우의 잠재적 변화율이다.

Rank Country Proj. GDP (2030, PPP) GDP (2017, PPP)% change
#1 China $64.2 trillion $23.2 trillion +177%
#2 India $46.3 trillion $9.5 trillion +387%
#3 United States $31.0 trillion $19.4 trillion +60%
#4 Indonesia $10.1 trillion $3.2 trillion +216%
#5 Turkey $9.1 trillion $2.2 trillion +314%
#6 Brazil $8.6 trillion $3.2 trillion +169%
#7 Egypt $8.2 trillion $1.2 trillion +583%
#8 Russia $7.9 trillion $4.0 trillion +98%
#9 Japan $7.2 trillion $5.4 trillion +33%
#10 Germany $6.9 trillion $4.2 trillion +64%

 

1950년 > 2015년 > 2050년으로 년도가 변하면서 예측하는 인구의 패더라임이다.

 

 

 

중국 vs 인도 인구 예측치

 

인도를 경제대국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현재까지도 암암리에 유지되는 계급

그리고 날씨 그리고 중앙집권체제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어떻게 이를 변화해갈지 지켜봐야 한다.

 

19년 5월 2일, 인도 SENSEX 지수

돈이란 무엇일까, 여기서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재 돈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이다. 

글이 길고 본질을 탐색하다보니 읽는 분들께서 정리가 안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화폐라는 것은 허구적이다.

 

누군가에게 1만원을 들이밀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상대방은 "이것은 1만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다시 5만원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상대방은 "이것은 5만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대목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단순한 종이를 "돈" 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대입해서 종이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기 시작했고, 똑같은 종이지만 이를 1천원, 다른 종이는 1만원, 다른 종이는 5만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돈의 어원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직 없는데, 사람과 사람끼리 돌고 돌아 교환가치를 가진 무언가를 '돈'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조개껍데기가 될 수도 있고 돌맹이나 금덩이가 될 수도 있었다.

 

화폐를 이해하는데에 있어서 고전적이지만 과거 철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의 글을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된다.

과거엔 경제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 과거 경제학자들은 철학자였다고 보면 된다.

물론, 현재 경제에 비추면 허점투성이 이론이지만 화폐, 그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는데에 있어서는 필요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철학자 푸르동의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

 마르크스의 철학의 빈곤에서도 인용&패러디되는 독일철학자 푸르동의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이라는 책에서는 가치라는 것은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풀어썼다. 거기서 두 가지를 언급한다. 효용가치와 교환가치이다.

 

1. 효용가치

효용가치 : 자연물이든 산업의 생산물이든, 모든 생산물은 인간의 생존에 쓸모가 있다면 효용가치가 있다고 표현한다.

 

2. 교환가치

산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필요하면 욕구가 생기고 이를 채우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고 한다. 이것이 1차 산업이든, 2차 산업이든, AI나 Robot이 이를 대체한다고 하여도 본질적으로 AI나 Robot 또한 인간이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생산한다는 기초적인 원론이다. 그러므로 생산없이는 생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필요하다면 욕구가 생기고 그것을 혼자 채울 수가 없다. 그래서 생산 전반에 걸쳐 분업이라는 생산 방식이 만들어졌고 내가 자동차를 만들면 다른 사람은 나에게 자동차 부품을 팔았다. 이처럼 분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생산된 노동으로 상품이라는 형태가 취해져서 만들어진다. 이 상품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유용하여 생산, 판매되며 상품이란 것은 그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분업을 전제함으로써 교환가치라는 것이 생성되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교환을 제안하고 일용적 가치와 교환 가능한 가치를 구별하도록 제안하게 된다.

 

<푸르동의 가치 판단의 문제점>

이 당시 푸르동은 생활에 쓸모있거나 생활을 쾌적하게 해주는 필수품, 즉 인간의 생존에 쓸모가 있다면 효용가치로 보았다. 그런데 사람은 금전적 가치라는 것도 정의했는데, 푸르동은 이를 정의하지 않았고 당시 시대에는 이러한 이론도 없었다. 즉, 나한테 쓸모가 없고 필수품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어떠한 물건을 효용 있는 가치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푸르동은 그것이 쓸모있는지 없는지만 판단할 뿐, 수요와 공급을 잊고있다.

- 어떠한 생산물의 교환 가능한 가치는 수요가 똑같으면 공급이 증대함에 따라서 수요는 다시 감소한다.

쉽게 풀어쓰자면, 생산물이 수요에 맞춰서 생산되면 사람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공급을 늘린다. 생산물이 수요에 비해서 많아질수록, 그 생산물의 교한 가능한 가치는 그만큼 저하한다. 반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지면 생산물의 교환 가능한 가치는 그 만큼 상승한다.

 

- 공급이 단 한 개만 생산되는 희귀품이여도 수요가 0이라면, 더 없이 과잉되고 여분의 것이 된다.

 

- 모든 것의 효용가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생산물의 효용가치를 정하는 것은 소비자인데, 그 생산비용(원재료, 임금, 금전적 가치의 모든 것)과 교환된다고 내포한 상태로 생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떤 종류의 금전적 가치라는 것이다.

 

도출점 : 그래서 우리는 공급과 수요에서 한 편에 금전적 가치를 소비한 생산물을 팔고 싶다는 욕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전적 가치를 지니는 것과 교환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칼 마르크스는 푸르동의 '경제적 여러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을 통해서 '철학의 빈곤'이란 책을 냈고, 이 철학의 빈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도 비슷한 사상이 삽입된다. 자본론에서는 화폐도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매개 역할을 한다는 점으로 사실 인간의 노동과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치도 대충 알겠고, 상품도 알았다. 이제는 현대 화폐로 거슬러 올라가자>

돈(화폐)은 허구적이라고 했다. 왜 이 말이 나오는 것일까? 이유는 가치에 있다.

여기서 가치는 이 화폐를 받고 다른 교환가치, 예를 들면 아메리카노라고 치자.

내가 화폐를 주면, 종업원은 나에게 아메리카노를 준다. 이는 화폐에 교환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본다. 이거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

 

사실 화폐란 것은 우리 인간이 상상해 낸 것이며, 아무 의미도 없다. 화폐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화폐는 종이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본질적인 물건을 말하지않고, 추상적인 형태를 대입하여 말한다.

언급했듯이 종이를 1천원이나, 1만원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돈은 결국 신용이고, 이는 빚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왜 화폐를 믿을까? 어떻게 이를 교환가치로 믿고 거래할 수 있을까?

그 힘은 거대한 자본이 이를 신용보증하는데에 있다. 이 거대한 자본은 현재로써는 국가다.

달러는 미국이, 파운드는 영국이, 유로는 유럽이, 엔화는 일본이, 원화는 한국이 보증하고 통용된다.

 

돈은 결국 신용을 통해서 사용되고 그 가치를 부여받았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종이인데 사람들이 교환가치로써 이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화폐를 허구적으로 만들어냈다.

  파시즘과 나치즘

(좌)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 (우)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관련글 : [인물, 아돌프히틀러] 2차 세계대전은 왜 일어난 것인가?


■ 파시즘의 정의

 ≫ 1919년 이탈리아의 B.무솔리니가 주장한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을 말한다. 원래는 '묶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결속·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45년까지 세계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났던 독재적 정치․경제․사회사상․정치체제의 총칭이기도 하며, '결속주의'라고도 불린다.

 ≫ 본래 파시즘의 초기 등장 배경 이전엔 생디칼리즘(syndicalisme)부터 시작되었다. 생디칼리즘의 '생디카(syndicat)'는 '조합'을 의미하는데, 이 조합은 노동자 조직을 뜻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경제 분야에서 '직접 행동'을 주장하며 정부를 쓰러뜨리고 노동조합이 생산의 관리권을 장악해야 착취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라의 경제 독점을 이룬 것은 유대인들이었다. 특히나 독일인들은 이러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인종주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들이 유대인이었다. 이 이야기는 아래의 독일 파시즘의 배경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와 같은 반제국주의적 사상과 반자본주의 사상이 혼합된 것이 초기 파시즘이었으나, 점점 반공주의 가치가 심화되면서 극우적 사상으로 변질되었다.


■ 어떤 것을 파시즘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 정치적으로 급진주의[각주:1]를 일으키는 나라에서 흔히들 발생하는데, 국수주의[각주:2] 즉, 민족주의에서도 흔히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역사속에서 반공주의나 전체주의[각주:3] 등에서도 발생했다. 파시즘은 한 마디로 하나의 이념 또는 사상으로 시민들을 묶어 하나로 통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독일의 파시즘연구가 E.놀테는 파시즘을 유럽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여,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즉 1919∼1939년이라는 기간의 특유한 현상이라고 지적하였다.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선 파시즘론에서는 현대사회의 모든 반동적 독재정치운동을 파시즘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파시즘을 지칭한다.


■ 우리에게 주는 파시즘에 대한 시사점

 ≫ 파시즘은 본래 국가와 세계적인 대공황에서 비롯되었다. 즉, 국가의 경제적 위험과 시민들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의식주를 다른 나라에서 뺏어와야 한다는 국가자본주의의 경제사상이다. 이러한 파시즘은 한국에도 주는 시사점이 있다. 위의 정의에서도 앞서 언급했듯, 국가이기주의와 북한과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국가이기주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이라는 민족주의로 인한 국수주의 및 북한 핵 위협에 의한 비슷한 현상들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파시즘에 이르는 경제적인 이념이 발생하지는 않아 파시즘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몇몇 국민들에게서 김정일, 김정은에게 선동당하는 북한국민들은 모두 죄악이며, 세계에서 받아들이면 아니하고, 이를 감싸는 행위는 죄악이며 물리쳐야 하는 악의 존재, 그리고 스스로 붕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동일국가에 정치체제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각기 한 나라의 시민이지만 사회적으로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국가이기주의 사상이 발현되고 있다. 북한과의 분단갈등이 70년도 안되었지만, 천년역사가 된 것 마냥 '현실적인 타협'이라며 선동하는 것이다. 필자는 물론 북한은 독재체제이며, 남한이 유화정책을 펴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 시대적 사상을 통해 느끼는 바가 달라질 수 있으며 우리도 현대적인 파시즘을 선동당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본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칭찬일색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본다. 박정희가 자행한 부정부패와 기만성을 보기 보다는 그 정권 때 있었던 경제 성장만을 기억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제로 선동한다. 나쁜 것은 일체 말하지 않고, 반대파 의견은 좌파, 빨갱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으로 공감력부재, 물질주의, 이기주의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 또 다른 것은 서구인들에게서 나온 '자연도태설'이다. 이는 특수한 환경 하에서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종이, 그 환경 하에서 생존에 부적합한 형질을 지닌 종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서 이익을 본다는 이론이다. 불쌍한 인민들은 죽어야만이 너무 많아진 인구로 인해 나타날 치명적인 영향을 걱정하며 자연이 스스로 과잉 생물을 주기적으로 제거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적, 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시사가 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유리하며 자연도태설을 통해 자신들은 절대로 피해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이 이를 옹호했던 일이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이를 지지하는 국가이기주의적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비판하는 노예제도도 이러한 이론을 일부분 근거로 가져와 정당화 했던 과거가 있었다.

 ≫ 독일의 파시즘 또한 처음엔 경제적 이념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그것이 변질되어 갔다는 점을 시사하여야 한다. 보통 우리가 일컫는 파시즘은 파시즘 후기에 변질되어 버린 '후기 파시즘' 즉 독일의 나치즘을 일컫는 말이므로 함부로 파시즘이란 이야기를 꺼내 누군가를 선언 또는 정의하다간 큰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 독일 파시즘의 발생 배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암살과 1차 세계대전 발발

 ≫ 파시즘은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과 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 혁명적 기운에서 대두되었다. 먼저 독일의 파시즘부터 살펴본다.

 ≫ 1차 세계대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옆 나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다수 민족이 살고있었는데, 헝가리 왕국안에서 조차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인 등 다수의 민족집단이 흘러념쳤다. 그 중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것이다. 이로 인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 암살 4주 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이미 여러 인종들이 섞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몹시 싫어했는데, 전쟁 발발 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의 뮌헨으로 도피한다. 당시 히틀러는 25살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옆 나라,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 즉 외국 군대가 독일땅을 침범한 적이 없어 전쟁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독일에선 자동차가 생겨났고 현대화가 진행중이었고 20세기 초반 유럽은 평화와 번영이 오는 시대였다. 독일은 제2의 산업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군대는 강력했다. 뮌헨은 극우적 국가주의 정서가 강하게 들끓었고 히틀러 또한 독일 전쟁에 참여했다.

 ≫ 오스트리아vs세르비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세르비아의 동맹국인 러시아가 움직이려고 하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러시아의 동맹국인 프랑스에도 선전포고를 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vs 독일, 터키, 오스트리아 의 전쟁이었다.


■ 독일 파시즘의 발생 배경 -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되었다. 파시즘의 원인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2가지로 해석된다. 첫번째는 해외식민지를 잃은 것이였다. 독일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토고, 카메룬, 나미비아 등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는데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이러한 식민지를 모두 뺏겨버렸다. 두번째는 전쟁도발의 책임을 물어 연합국 손해에 대한 배상지불이 부과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식민지가 뺏겨 경제는 점차 침체된 상황에서 1921년 5월 1일 배상위원회가 독일에 1320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금으로 갚을 것을 결정했을 때 이 문제가 절정에 다다랐다. 당연히 독일은 이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자, 독일 국민은 베르사유 조약과 배상금에 분노했다. 독일은 반-유대주의, 베르사유 조약을 협상하는 정부는 독일시민이 아닌 국가 반역자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생겨난 이념이 파시즘이며, 선동가로 맥주아돌프 히틀러가 나타났다.


■ 독일 파시즘의 발생 배경 -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 1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부터 유대인은 독일사람 중 3%에 불과하였으나, 경제의 40~50%를 독점하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경제적 패배의식에 물들어 있었다.  현대에 시사해보면 우리나라도 경제를 잡고있는 것이 다른 민족은 아니지만,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대항하는 세력은 보기 힘든 구조를 생각해보았을 때 그 시기가 유대인들에게 반하는 세력을 꽃피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실감캐해주는 예일 수 있다. 오히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유대인에게 관대했고 유럽국가들이 반유대주의 사상이 더 강했다. 독일계 유대인 금융재벌인 막스바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정치자금까지 제공한 걸로 유명하다. 또한 독일은 유대인들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았으며 유대인의 독립국가 형성에 신경을 썼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유대인 과학자들의 정보망 교란이 있었고, 독일이 친 영국 성향의 유대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려하자 당시 독일의 경제를 잡고 있던 유대인들이 독일을 굴복시키기 위해 독일의 수출을 분쇄시키거나 독일상품 불매운동을 벌인다. 또한 공산당활동에 유대인들의 간접협조 혐의와 1936년 프랑스주체 독일 외교관을 암살하자 반유대감정으로 독일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독일엔 국수주의, 즉 인종주의가 발현된다.


■ 반 유대주의는 전체 유럽국가의 짓이며,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학살까지 내몰려고 하지는 않았다(?)

 ≫ 유대인 600만 학살은 조작 확대 되었다는 설이 감돈다. 실제로는 60만정도이며, 그것도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과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25(7.6평)평방미터 되는 곳에 7~800명을 집어넣고 독가스로 죽였다는데, 실제론 그런 계산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전시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소각로는 194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스탈린의 소련군 또한 폴란드 유대인을 많이 죽였으며 나중에 이것마저 독일의 만행으로 뒤집어 쓰게 된다.

 ≫ 1933~1941년 까지 독일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독일의 밀텐슈타인이 유대인이주를, 하인리히 히믈러 SS사령관은 시온주의자의 대아랍 지하군사 조직인 '하가나'의 활동을 도왔다. 1942년 요제프 괴밸스의 본격적인 유태인박해 주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보다는 그들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으로 보내 그들만의 국가를 형성시키고 나중에 독일의 우방으로 삶으려 했다.


■ 이탈리아 파시즘의 발생 배경 - 18세기 부터 1차 세계대전의 흐름

 ≫ 통일 전까지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서로 성격이 다른 여러 나라들이 모인 지역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한 자유와 평등사상이 전파되면서 이탈리아에도 외세의 지배를 물리치고 자유 민주 국가를 건설하자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1870년,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지만 다른 방식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각 지방의 이탈리아인들은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다. 게다가 경제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남부 지역의 농민과 빈민들의 반란이 이어졌고,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되었음에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이에 따른 경제 침체와 정치 불안이 심해지면서 이탈리아는 혼란에 휩싸이고 만다.


■ 이탈리아 파시즘의 발생 배경 - 베니토 무솔리니의 탄생

 ≫ 1883년 7월 29일 베니토 무솔리니가 태어났다. 무솔리니 일가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로 당의 화합에 자주 데려갔다. 무솔리니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폭력을 써서 길을 터간다고 하는 수단, 후의 이탈리아 파시즘의 씨앗이 보였다. 무솔리니는 10살 무렵부터 식사 문제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으며, 11살 때엔 학급의 친구를 칼로 찔렀다. 26살 때 무솔리니는 사회당계의 신문 라 로타 디 크랏세의 편집장으로 취임하여 선동적인 기사를 써 나갔다. 대중들이 어떤 일이든지 믿을 수 있게 하는 법을 배웠으며, 거짓말 기사를 써도 시민들이 믿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대중은 잊는 것도 빠르니까. 눈치채기 전에 정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솔리니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택한 파시스트다.


■ 이탈리아 파시즘의 발생 배경 - 1차 세계대전과 무솔리니의 정치

 ≫ 1915년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평화주의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소집에 응하여 1년 반동안 알프스 산 중에서 전쟁에 참가한다. 1917년 2월 수류탄의 폭발로 무솔리니는 전신에 40곳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으나, 후에 선동 정치에서 그는 폭발의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며 포장 정치를 하게 된다. 종전 후 1919년 이탈리아는 대혼란에 빠졌고 내전의 고비를 겪었다. 노동자들의 폭동과 파업이 연이었고 이탈리아 중산층들은 국기를 대신해 공산주의 깃발이 걸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공포를 이용하여 공산주의자를 제거하기 시작했고, 법과 질서의 회복과 실업률의 저하를 막는 것을 약속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무솔리니는 퇴역군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39살의 무솔리니는 인민을 다스리는 멍청한 정치가들의 목을 조르겠다고 선언하고 의회의 해산과 무솔리니의 수상 임명을 국왕에게 요구할 것을 선동했다. 이렇게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는 내셔널리즘의 호소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였고, 정치와 경제의 긴밀한 협동체계를 꾀함으로써 파시즘을 창출하였다. 무솔리니는 로마진군을 행하여 계급 개념 위에 민족 개념을 두고 ‘아래로부터 형성, 조직된 국가’임을 주장하였다. 1933년 1월에는 독일 나치스정권과 손잡고 에티오피아 침략, 국제연맹 탈퇴, 40년에는 독․이․일 3국 동맹체결을 거쳐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도국이 되었다.


■ 독일의 파시즘(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 나치즘과 파시즘은 모두 사회주의 세력 성장에 반대했고, 중산층의 지지를 얻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침략전쟁을 시도하여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으며, 나치즘은 여기에 인종차별까지 했다. 둘의 공통점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경제적 공황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둘 다 초기에 퇴역군인을 통한 무력을 이용했다. 



독일 파시즘 출처 및 참고 : http://tip.daum.net/question/2993734

https://www.youtube.com/watch?v=wp9FnJhLZs0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8B%9C%EC%A6%98
https://www.youtube.com/watch?v=b2h20vxX2m4
http://utopiand-reamers.tistory.com/58


이탈리아 파시즘 출처 및 참고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179&cid=47315&categoryId=4731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7750&cid=43041&categoryId=43041

https://www.youtube.com/watch?v=v56IHdQ67Sc

http://bobeathaja.tk/%ED%8C%8C%EC%8B%9C%EC%A6%98%EA%B3%BC-%EB%82%98%EC%B9%98%EC%A6%98%EC%9D%98-%EB%9C%BB%EA%B3%BC-%EC%B0%A8%EC%9D%B4%EC%A0%90-%EB%B9%84%EA%B5%90/


  1. 급진주의 :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의 사회 제도나 정치 체제 관행 따위를 급격하게 변혁하려는 주의. [본문으로]
  2. 국수주의 : 편협된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극단적인 국가주의, 타 민족, 타 국가에 배타적이거나 초월적 성격을 지닌다. [본문으로]
  3. 전체주의 : 개인은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을 근거로 강력한 국가권력이 국민생활을 간섭·통제하는 사상 및 그 체제. [본문으로]

■ 시사점

 ≫ 한국 원전이 안전하다. 사고가 난 적이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려움, 과거 역사에서 박정희대통령은 핵 개발을 위해 가압중수로를 들인 적이 있었음. 한국의 구리 원전의 경우 방파제가 취약하여 해일에 대비책이 필요함. 한국 한울 원자력 발전소는 2007년 한국에서 최다 고장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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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안전위원회 의원, 동국대학교 교수 김익중

 ≫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사고,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3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들에서 공통점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확률입니다. 원전 개수가 많은 나라 순으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김익중 교수가 방송에서 한 발언이다. 미국은 104개, 사고 당시 소련은 66개, 일본은 54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순서대로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23개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이 5개, 2022년까지 총 42개를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에 이어 소련, 그리고 일본에서 원전사고가 났다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고는 원전대국들에서 발생한 것이다. 원전개수가 많은 순서대로라는 것인데, 이 시점에서 저자 김익중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 봤다고 한다. 저자의 추정치는 27%, 참고로 저자는 서울대에서 의학과 미생물학을 졸업했다. 일본 보험회사의 계산법대로라면 30~40년 내로 한국에서 핵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한다.

 ≫ 김익중 교수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일단, 원전의 개수를 늘리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중국도 일년간은 원전공사를 하지 않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탈핵의 과정을 밟고 있고, 유럽의 최대 원전대국인 프랑스마저도 원전 개수를 줄이는 것이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한다. 정부가 원전을 없애고 지금부터라도 태양열 등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 현재 한국 원전은 몇 대이며, 생산 용량은 얼마일까?
 ≫ 대한민국은 2015년도 기준으로 4곳의 원자력 발전소와 24기의 원자로를 가동중이다. 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6위이며, 회사 단위로는 세계 2위의 원자력발전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있다. 원전은 한국 내 전체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 대한민국 원자력 발전소는 2001년 4월 2일 설립된 한국전력공사 계열 발전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독점 운영하고 있으며, 2011년 10월 26일 설립된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감시감독을 받고 있다.
 ≫ 현재 원전은 4곳이 있다. 한울, 월성, 고리, 한빛이다.


■ 상업운전 개시 순서로 보기

구분

상업운전 개시

원자로형

설비용량 (kW)

고리 1호기

1978년 04월 29일

가압경수로 (PWR)

58만 7천

월성 1호기

1983년 04월 22일

가압중수로 (CANDU)

67만 9천

고리 2호기

1983년 07월 25일

가압경수로 (PWR)

65만

고리 3호기

1985년 09월 3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고리 4호기

1986년 04월 29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빛 1호기

1986년 08월 25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빛 2호기

1987년 06월 1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울 1호기

1988년 09월 1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울 2호기

1989년 09월 3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빛 3호기

1995년 03월 31일

가압경수로 (System 80)

100만

한빛 4호기

1996년 01월 01일

가압경수로 (System 80)

100만

월성 2호기

1997년 07월 01일

가압중수로 (CANDU)

70만

월성 3호기

1998년 07월 01일

가압중수로 (CANDU)

70만

한울 3호기

1998년 08월 11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월성 4호기

1999년 10월 01일

가압중수로 (CANDU)

70만

한울 4호기

1999년 12월 31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빛 5호기

2002년 05월 21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빛 6호기

2002년 12월 24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울 5호기

2004년 07월 29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울 6호기

2005년 04월 22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신고리 1호기

2011년 02월 28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고리 2호기

2012년 07월 20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월성 1호기

2012년 07월 31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월성 2호기

2015년 07월 24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고리 3호기 (건설중)

2014년 8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고리 4호기 (건설중)

2014년 9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1호기 (건설중)

2017년 4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고리 5호기 (건설중)

2018년 12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2호기 (건설중)

2018년 4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고리 6호기 (건설중)

2019년 12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3호기 (건설예정)

2020년 6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4호기 (건설예정)

2021년 6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 설비용량 순차로 보기

구분

상업운전 개시

원자로형

설비용량 (kW)

고리 1호기

1978년 04월 29일

가압경수로 (PWR)

58만 7천

고리 2호기

1983년 07월 25일

가압경수로 (PWR)

65만

월성 1호기

1983년 04월 22일

가압중수로 (CANDU)

67만 9천

월성 2호기

1997년 07월 01일

가압중수로 (CANDU)

70만

월성 3호기

1998년 07월 01일

가압중수로 (CANDU)

70만

월성 4호기

1999년 10월 01일

가압중수로 (CANDU)

70만

고리 3호기

1985년 09월 3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고리 4호기

1986년 04월 29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빛 1호기

1986년 08월 25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빛 2호기

1987년 06월 1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울 1호기

1988년 09월 1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한울 2호기

1989년 09월 30일

가압경수로 (PWR)

95만

신고리 1호기

2011년 02월 28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고리 2호기

2012년 07월 20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월성 1호기

2012년 07월 31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신월성 2호기[5]

2015년 07월 24일

가압경수로 (OPR-1000)

100만

한빛 3호기

1995년 03월 31일

가압경수로 (System 80)

100만

한빛 4호기

1996년 01월 01일

가압경수로 (System 80)

100만

한빛 5호기

2002년 05월 21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빛 6호기

2002년 12월 24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울 3호기

1998년 08월 11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울 4호기

1999년 12월 31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울 5호기

2004년 07월 29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한울 6호기

2005년 04월 22일

가압경수로 (KSNP)

100만

신고리 3호기 (건설중)

2014년 8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고리 4호기 (건설중)

2014년 9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고리 5호기 (건설중)

2018년 12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고리 6호기 (건설중)

2019년 12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1호기 (건설중)

2017년 4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2호기 (건설중)

2018년 4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3호기 (건설예정)

2020년 6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신한울 4호기 (건설예정)

2021년 6월 예정

가압경수로 (APR-1400)

140만



■ 현재 한국 원전은 몇 대이며, 생산 용량은 얼마일까?

 1. 한국의 고리 원자력 발전소

 ≫ 고리 1호기는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어주었고, 1978년 4월 29일 처음 가동되었으며 원전 4기 주위로 방파제가 있는데요. 사진에서 보듯이 방파제가 매우 허술합니다고리 1호기의 탄생으로 우리나라는 21번째로 원자력 발전을 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2015년 6월 12일 기준, 그동안 고리 1호기는 124건의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켜왔습니다. 이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국제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심사한 결과 계속운전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2007년 12월에는 결국 주민들과의 합의도 이뤄집니다. 고리 1호기는 이듬해 1월 정부로부터 2017년 6월까지 10년간 운전을 허가받아 다시 가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2007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기적 안전성 평가’ 기준과 미국의 ‘운영 허가 갱신’ 기준 등을 적용한 결과 고리 원전 1호기의 원자로 용기와 배관, 각종 구조물 등 주요 기기가 10년간 충분히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 이후 고리 1호기는 노후 원전의 대명사로 여론의 불신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전 세계의 이슈였던 2011년 4월, 전기제어장치(인입차단기) 고장으로 원자로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맙니다. 원자력 안전에 특히 민감하던 시기여서 부산지방변호사회가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지방의회까지 결의안을 내는 등 지역 사회의 반발과 우려가 거셌는데요. 결국 정부는 정밀 점검 결과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5월 재가동을 허가했습니다.

 ≫ 참고로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1971년 2월에 가동을 시작했고, 일본 정부가 수명을 10년 연장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2008년에 설계수명 30년이 지나자 수명을 10년 연장한것과 닮은 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보다 고리 원전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고리 원전이 좀 더 안전합니다. 후쿠시마의 경우 전원이 차단되면 수소가 농축되어 폭발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폭발했습니다. 하지만 고리 원전은 전원이 차단되어도 수소를 제어할 수 있는 안전 장치가 추가로 설치되어있습니다.


[구글 지도에서 보기]


관련기사 : <고리원전 1호기 10년 더 가동한다>, 동아사이언스 2007년 12월 07일자

관련기사 : 고리원전 1호기 고장… 재가동 논란

관련기사 : [르포]고리 원전 1호기 가보니…



 2. 한국의 월성 원자력 발전소

 ≫ 고리 1호기가 1978년 가동 시작 후, 1983년 월성 1호기가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2,3,4호기는 97년~99년 사이에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고리에 비해 방파제도 길게 잘 만들어진 편(붉은색 다각형), 월성 1,2,3,4호기는 가압 경수로인 고리 원전과 달리 캐내다의 CANDU형 가압중수로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압중수로로 개발된 이유는 발전소 건설이 진행되던 박정희 정권 때 핵개발을 진행했고 70년대 중반에 이미 핵무기 설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경수로에서는 핵물질을 추출할 때 사용할 연료봉 생산이 힘들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중수로를 사오게 됩니다. 번외로 인도 역시 CANDU형 중수로로 핵개발에 성공했고 캐나다가 이후 한국에 CANDU를 팔지 않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외부로 기술을 유출했다는 설)

 ≫ 핵무기 개발을 염두하고 중수로를 사들여왔으나, 중간에 미국 포드 행정부의 방해로 인해 한국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1979년에 핵연료 재처리 시설의 설계가 끝났고 계획대로라면 1985년쯤에는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 만약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발을 했다면, 아마 경제 제제로 인해 현재 경제만큼 부상하지 못했을 것 입니다. 박정희 암살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함께 연구 자료와 프로젝트를 전량 폐기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압중수로 발전소가 있는 이유는 박정희 정권의 70년대 핵개발 열망때문이라는 것.

 ≫ 만들어진지 1년도 안된 1984년에 23톤의 중수가 유출되었고, 1988년에도 누출 사고로 인해 3일간 원자로를 멈춤, 2014년엔 월성 원전이 해킹당했고, 2015년 5월 15일 월성 4호기 사용 후 핵연료봉 낙하사고, 2016년 5월 12일 월성원전 1호기 고장으로 발전이 정지되었습니다.


관련기사 : 원전 해킹..불안감은 여전

관련기사 : 월성 4호기 사용후 핵연료봉 낙하 사고

관련기사 : 월성원전 1호기 고장으로 발전 정지


[구글 지도에서 보기]



3. 한국의 영광 원자력 발전소

 ≫ 다른 발전소들은 다들 동해안에 건설되었는데, 영광만 서해안에 건설된게 이색적입니다. 영광 1호기는 1986년 8월 25일에 운전을 시작했고, 형태는 고리 원전에 사용된 원자로와 유사한 가압 경수로입니다. 1995년에 운전을 시작한 영광 3호기부터는 OPR1000(Optimized Power Reactor 1000=KNSP)이라는 한국형 원자로를 사용하기 시작, 참고로 OPR1000은 북한 영변에 지어주던 경수로와 동일한 형태입니다. 95년부터는 국내 기술 95%의 OPR1000 설계의 원자로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설계 수명은 40년. 기존 고리 1호기의 30년과 비교하여 10년이 더 늘어났습니다.

 ≫ 그림의 왼쪽부터 1호기 마지막 오른쪽이 6호기입니다. 2002년 12월 24일 영광 6호기를 끝으로 이 지역 원전 건설을 끝이난 듯 합니다.

 ≫ 2005년, 김봉열 영광군수는 '영광원전이 가동된 이후 20여 년 동안 124건의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했고 2003년 5·6호기 열전달 완충판 이탈, 동년 12월 5호기 방사성 오염폐수 3500t 바다 유출, 3·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 결함이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 우리나라에 원전 사고가 단 한건도 없었다고?


[구글 지도에서 보기]



4. 한국의 한울(울진) 원자력 발전소

 ≫ 한울(울진) 1호기는 1988년에 프랑스 프라마톰사가 가압 경수로 형태로 지어주었고, 1998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한울 3호기부터는 우리나라 독자 규격인 OPR1000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앞에 길게 늘어선 방파제가 있습니다. 2001년에 뜨끈한 배출수에 유혹되어 밀려들어온 새우떼와 해파리떼 때문에 냉각용 해수 흡입구가 막혀서 원자로를 잠시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 외에도 몇번 냉각수 유출 사고가 있었습니다. 2003년에는 5년동안 증기 발생기와 안전 시설을 보강하는 작업을 한 바 있습니다. 2016년 기준 6기의 상업용 원자로가 가동중이며, 발전소 인접 부지에 신한울 1,2호기의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2013년 5월에 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 한울원자력발전소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 2004년 이후 고장 사고로 인한 가동 중지건수가 21건으로, 전체 원자력 발전소 41건의 절반을 차지하여 2007년에 대한민국에서 최다 가동 중지 원자력 발전소로 기록되었으며, 직원의 조작 실수로 인한 고장, 정지건도 총 8건 가운데 이곳이 5건을 차지하였습니다.


관련기사 : 왜 울진原電만 이런일이?…가동중단 사고 최다


원전사고 문자알림 신청하기



출처 및 참고 : 오마이뉴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3yMF&articleno=15601245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7283 그 외 글마다의 아래 관련기사들 참조.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 원자력발전소 이해전에 숙지하기

(제어봉)

 ≫ 원자로는 연쇄핵분열 반응을 통해 열을 생산하는데, 제어봉은 연쇄핵분열의 매개체인 중성자를 흡수해 연쇄핵분열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이다. 제어봉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물질들은 중성자의 에너지 변화에 따라 중성자 포획 능력이 달라지므로, 제어봉 집합체는 원자로의 다양한 중성자 에너지 영역에 맞추어 설계해야 하며, 보통 은, 카드뮴, 붕소, 인듐이 재료가 된다.

(노심)

 ≫ 원자로의 핵연료를 담고 있는 원자로의 부품으로, 핵반응이 일어나는 곳이다. 노심 안에는 핵연료와 제어봉 있고, 냉각재가 상실되면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체르노빌 사고와 관련 있음), 노심에 핵분열로 생긴 열이 쌓이면 노심의 구조물이 녹거나 파손되는데 그 자체가 파손되어 방사성 물질이 주위에 확산될 수 있다.


■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의 구조와 개략도로 설명하는 원전사고

 ≫ 원자력 발전에서는 핵연료(일반적으로 우라늄)를 핵분열 반응을 통해 태워 물을 끓이고 그 증기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낸다. 핵분열 반응은 우라늄에 외부 중성자가 흡수되면 우라늄이 더 안정한 다른 원소로 분열되면서 큰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 과정에서 여분의 중성자가 생성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중성자들은 다시 근처의 우라늄에 흡수되면서 연쇄적으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큰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에서 핵분열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감속재와 제어봉이 주로 사용되는데, 감속재는 핵분열 반응에서 생성된 중성자의 속도를 느리게 하여 핵분열 반응을 증가시키고(중성자가 너무 빠르면 우라늄에 흡수되지 않고 그냥 통과해 버려 핵분열 반응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지 않게 된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하여 핵분열 반응을 멈추게 한다. 스리마일 섬 원전인 가압경수로는 일반 물을 감속재로 사용한다. 여기서 ‘가압’이라는 말은 원자로 내부의 냉각수를 고압으로 유지해 물이 끓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의 가압경수로 개략적 구조)


(확대를 위한 원전 구조 -1)

(확대를 위한 원전 구조 -2)

 ≫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당시 가압기의 증기 배출 밸브(PORV, 7)가 열려 있어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나서야 블록 밸브(Block valve, 9)를 이용하여 증기 배출이 차단되었다. 또한 증기발생기(3)에 연결된 비상 냉각수 공급관의 블록 밸브(24)가 닫혀 있었으며, 방사능에 오염된 1차 계통 냉각수가 보조건물(Auxiliary Building)로 유출되어 냉각수에 녹아 있던 방사능 물질이 환기구(22)를 통해 대기로 방출되었다.

 ≫ 증기발생기에서 냉각된 1차 계통의 냉각수는 냉각수 펌프(Reactor Coolant Pump, 5)에 의해 원자로 노심으로 다시 순환된다. 터빈을 돌리는 데 사용된 2차 계통의 증기는 냉각탑(Cooling Tower, 13)에서 공급되는 외부 냉각수에 의해 응축기(Condenser, 12)에서 다시 물로 변환되고 이온변환기(Demineralizer, 14)에서 불순물이 제거된 뒤에 펌프(Main Feedwater Pump, 23)에 의해 다시 증기발생기로 순환된다. 원자로와 1차 냉각 계통은 격납건물(Reactor Building, Containment)에 설치되고, 증기발생기를 제외한 2차 계통은 터빈 빌딩에 설치된다. 따라서 방사선에 노출되는 1차 계통 냉각수와 발전기를 돌리는 데 사용되는 2차 계통 냉각수가 서로 분리된다.

 ≫ 원자로 내부를 순환하는 1차 계통 냉각수가 증기로 변환되면 냉각수 흐름을 방해하고 원자로가 가열되거나, 중성자 흡수가 낮아져 핵분열 반응이 가속될 수 있다. 따라서 높은 온도에서도 물을 액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가압기(Pressurizer, 6)가 사용된다. 물의 압력이 높아지면 압력 밥솥에서 그런 것처럼, 끓는 점이 올라가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도 물을 액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가압기의 구조도 압력 밥솥과 비슷한데, 내부에는 물과 증기가 함께 섞여 있고 하단에는 가열기, 상단에는 살수 노즐이 있다. 압력을 높힐 때는 가열기를 이용하여 증기를 더 만들어 압력을 높히고, 압력을 낮출 때는 살수 노즐에서 냉각수를 뿌려 증기 일부를 물로 변환(응축)해 압력을 낮춘다.

 ≫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상단의 배출 밸브(Pilot Operated Relief Valve, 7)가 열리면서 증기가 배출되고 압력이 낮아진다. 가압기에서 배출된 증기는 격납건물 내의 증기 배출 탱크(Drain Tank)에 저장된다. 원자로 격납 건물 바닥에는 배수조(sump)가 있으며, 이 배수조가 일정 수위 이상으로 차게 되면 보조건물에 마련된 방사능폐기물 저장탱크(Radiation waste storage tank)로 옮겨진다. 보조건물에는 1차 계통 냉각수 양을 조절하기 위한 냉각수 보충 탱크(Makeup tank, 18)가 있고, 비상시에 고압 주입 펌프(High Pressure Injection Pump, 15)에 의해 냉각수가 원자로에 직접 주입될  있다. 냉각수가 너무 많을 경우에는 배출 라인(Let-down)을 통해 붕산염 물 저장 탱크(Borated Water Storage Tank, 붕산염은 중성자를 흡수하여 핵분열 반응을 느리게 함)에 저장된다. 1차 냉각수에 녹아 있는 방사성 물질(주로 제논[Xe]과 같은 비활성 기체)은 배출가스 압축기(Waste Gas Compressor)에 의해 배출가스 감쇠탱크(Waste gas decay tank, 20)에 저장된다.

 ≫ 원자로가 급격히 과열되는 경우 크게 두 가지 긴급 조치가 취해지는데, 첫번째는 원자로 비상정지(SCRAM)라 불리는 방법으로 모든 제어봉을 원자로에 긴급히 삽입하는 것이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하기 때문에 핵분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차단한다. 두번째 방법은 노심긴급냉각장치(ECCS; Emergency Core Cooling System)라 불리는데, 여러 장치가 복합적으로 사용되지만 스리마일 섬 원전에서 사용된 방법은 저장되어 있는 냉각수를 고압 펌프(위 그림 2에서 15)를 이용하여 원자로 내부에 직접 주입하는 것이다. 스리마일 사고에서는 이 두가지 방법이 모두 사용되었지만 (ECCS는 부분적으로 사용됨) 핵연료봉이 녹으면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는 노심 용융이 발생했다. 출처/IEEE Spectrum 1979


■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 사고 원인과 당시 상황

(부주시사 윌리엄 스크랜튼(좌) 비상 관리국 국장 오란 핸더슨(우))

 ≫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미들타운에서 일어난 멜트다운 사고[각주:1].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로는 시설외까지 위험을 수반한 사고(레벨 5)다. 한국에서도 같은 종류가 가동 중인 가압수형 원자로가 일으킨 역대 최악의 사고당시 스리마일 섬에는 총 2개의 원자로가 건설되어 있었고 원자로의 유형은 가압수형 원자로였다. 가압수형 원자로의 경우 압력을 가한 물을 원자로 냉각재 및 중성자 감속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 물이 끊임없이 순환되도록 유지하여 끓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스리마일 섬 사고의 경우 가장 중요한 급수 시스템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 원인이다.

 ≫ 사고를 발생시킨 최초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자정 무렵 발전소 1호기의 핵연료 재충전을 위해 차단조치를 내렸고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조치로 발전소는 2호기만 가동 중이었고 가동 내내 큰 문제가 없었는데 새벽 4시 무렵 주 급수 펌프가 뻗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조치로 발전소는 2호기만 가동 중이었고 가동 내내 큰 문제가 없었는데 새벽 4시 무렵 주 급수 펌프가 뻗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압수형 원자로는 물 공급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 급수 시스템이 뻗으면 보조장치가 바로 작동하여 위험한 사태를 피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는데, 최초 보조급수 계통 밸브가 닫혀있었다. 정상시 보조급수 계통이 개방된 채로 가동되어야 하지만 당시 운전원이 개방이 되었는지 닫혀있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MCR 내부 보조급수기가 닫혀있는지 열려있는지를 표시해주는 표시등이 표지판 같은 Tag에 가려져 운전원이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열려야 할 보조급수계통 밸브가 몇 개는 닫혀있었고, 열리지 말아야할 가압기 압력 방출 밸브가 개방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미세한 누출이 있었는데 통제실 콘솔 표시등에는 수치가 정상수치 범위내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비상 노심 냉각 시스템이 가동되어 원자로를 식히고 있었는데 이걸 정상이라고 판단한 운전원은 비상 노심 냉각 시스템을 꺼버리게 된다.

 ≫ 당시 원자로 내 냉각수는 실제로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계측기에는 냉각수 수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정상상태에서 고압인 원자로 내 압력이 가압기 압력방출밸브의 미세한 누설로 압력이 빠지고 있었고, 압력이 떨어진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상태로 변하는 현상이 발생하므로 냉각수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당시에 설치되어 있던 노심 수위 계측기는 이 끓어오르는 거품을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 압력이 떨어지는데도 수위는 올라간 것으로 계측되었고, 운전원의 관점에서는 냉각수의 수위가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상 냉각수를 공급하면 안되므로 당연히 비상노심냉각시스템을 끌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운전원 교육에서는 가압내 내의 냉각수 수위는 절반을 유지하도록 메뉴얼에 지정되어있으며 해당 수위가 가득차게 운전하지 않도록 교육했다. 

 ≫ 결국 최후의 보루인 비상 노심 냉각 시스템마저 꺼져버리자 증기압력이 증가하여 파이프가 파손되고 원자로의 냉각수가 유출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자로 온도가 치솟아 원자로 노심이 녹기 시작하면서 방사능 수치가 급상승하였다. 관계자들이 원인 파악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원자로 방호장비가 녹아 최악의 상황 직전까지 갔으나 16시간 만에 간신히 사고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행으로 교대하는 운전원이 가압기 압력방출 밸브의 미세누설을 발견하고 보조 급수 펌프의 자동기동으로 변경하면서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수 있었다. 결국 수동으로 조작하여 밸브를 닫고 냉각 펌프를 작동시킨 후에야 간신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원인 파악이 늦어지는 바람에 노심의 절반 이상이 녹았다. 하지만 원자로가 파괴되거나 붕괴되는 사태는 모면하여 인명피해도 없었고 미국 본토에 방사능 낙진이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발전소 하나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더불어 당시 1호기는 고장이 없었는데 2호기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나란히 가동중지 조치가 내려졌으며 2호기는 1980년대 말까지 정화작업을 해야만 했다.


■ 비상사태 선포, 혼란스러운 대피 행렬

 ≫ 아침 7시경 발전소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7시 15분에는 보조빌딩에 있던 직원들이 대피했다. 이와 함께 상급 감독기관에 사고 현황이 보고되었다. 7시 20분 격납건물에서 측정된 방사선량은 시간당 800 렘에 달했다. 8시 26분 고압 펌프를 재가동하여 냉각수 보충을 시작했고, 오전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연료봉이 다시 냉각수에 잠겼다. 오전 11시에는 스리마일섬에서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직원에게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사고 수습에는 원전 제어실, 전력회사(Met Ed), 스리마일섬 인근 지자체, 펜실베니아 주정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에너지성, 백악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개입했는데, 단일 지휘 체계가 확립되지 않고 서로 엇갈리는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의사소통에 큰 혼돈이 있었다. 또한 언론 매체가 시시 각각 보도를 하면서, 미끄럽지 못한 언론에 대한 대응으로 더 큰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언론에 발표를 할 때는 “예상보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보다는 “생각했던 것 만큼 상황이 나쁘지는 않습니다”가 될 수 있도록 보수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필요가 있는데도, 전력회사 쪽이 사고 초기에 모든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발표한 이후에 상황이 더 나빠지자 원래 발표를 번복하게 되었다. 

 ≫ 이후 원자로를 정상 상태로 복구하려는 노력이 계속 되었고,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원자로의 정확한 상태 및 피해 상황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 졌다. 여러 지점에서 주기적으로 방사선 측정이 진행되면서 방사능 물질 누출을 감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측정값들이 보도 되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민 대피 계획이 수립되었는데, 주민을 대피 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 대피시킨다면 언제 대피시킬 것인지, 대피 반경을 얼마로 할 것인지에 대해 각 기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 결국 사고 발생 이틀 후에 원자로 내부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펜실베니아 주지사였던 리차드 손버그(Richard Thornburgh)는 원전 반경 5마일(8km) 내의 임산부와 아동을 대상으로 대피 권고를 내리자, 뒤이어 약 20만 명의 주민이 자발적으로 대피 행렬에 나섰다. 후에 손버그는 주민 대피 권고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주민 대피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노약자나 중환자실 환자,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들을 대피시킬 때 발생할 수 있는 인명 피해부터, 질서 있게 대피하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교통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인명 피해가 예상됩니다. 이런 종류의 주민 대피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고, 홍수나 태풍으로 인한 주민 대피와는 그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반경 5마일 내 주민 대피를 준비할 때, 그것이 반경 10마일, 20마일, 나아가 100마일까지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 사고 후 거의 한달이 지난 4월 27일에야 원자로 내부 냉각수가 펌프를 이용하지 않은 자연 순환상태에 이르렀고 냉각수의 온도도 끓는 점 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제서야 향후 14년에 걸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이 얼마나 심했는지 1980년 7월에 원자로 격납건물에 처음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1982년이 되어서야 사진을 통해 연료봉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다. 손상된 원자로와 방사능 물질, 오염된 건물을 처리하는데 총 100억 달러 (1달러를 1000원으로 환산한다면 한화로 약 10조원)가 소요되었다.


■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 시민들의 불안과 그 이후

 ≫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여러 안전장치가 겹겹히 설치되었는데도 예상치 않은 시나리오에 의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방사능이 원전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원전 사고로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해 큰 경각심을 불러왔다.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전은 에너지 정책이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국민에게 원자력 발전이 굉장히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었고, 많은 경우에 사고가 축소·은폐되어 왔다. 특히 옛소련에서는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면서 대부분의 사고가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사고 처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전 사고는 여러 안전장치가 겹겹히 설치되었는데도 예상치 않은 시나리오에 의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방사능이 원전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 2010년 1월에 1호기는 재운전을 시작했으며, 같은 달에 2호기의 발전기는 해체되어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시런 해리스(Shearon Harris) 원자력 발전소로 옮겨 설치되었다.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주 정부에서는 인근 지역에 대피령을 내렸고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미친듯이 탈출하였다. 다행히 누출된 방사능 수준이 자연 방사선량에 못 미쳐 민간인들의 피폭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하여 반 원자력 발전소 운동이 발생하였고 이에 오일 쇼크로 국면전환을 꾀하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더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여 70여 개에 달하던 원자력 발전소 건설계획이 싸그리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정치권의 금기처럼 치부되다가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30년~40년 만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재개를 선언하였는데, 하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반대가 격심해졌다. 일단 오바마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 원자로 겉에 붕소-10을 가득넣은 냉각수를 채우는 형태의 극히 안전한 원자로 설계가 나왔으나 도입비가 너무 비싸서 아무도 안 쓰고 있다. 더불어 이 사건을 악화시킨 수위 계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압수형 원자로에는 냉각수의 실제 수위를 표시하는 계측장비 설치가 의무화됐다. 또한 MCR룸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 하여 운전수가 MCR의 계측 표시기를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하였다.

 ≫ 이 사고로 인해서 운전원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는 등의 발전이 있었다. 사실 격납용기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지, 격납용기가 없었다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 꼴이 날 뻔 했다.



출처 : 나무위키, http://scienceon.hani.co.kr/?document_srl=34785

  1. 멜트다운 :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어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하여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 [본문으로]

■ 원자력 발전소의 안정성을 알기 전에 원자력발전의 원리를 알아보자

 ≫ 원자력발전을 들여다보면, 수증기를 만드는 과정만 제외하고는 그 원리 가 다른 화력발전과 동일하다. 화력발전에서는 보일러에 물을 넣고, 석탄이 나 석유를 태워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수증기를 이용 하여 터빈과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든다. 원자력발전도 수증기를 만들어 터빈과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수증기를 만 드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원자로라는 보일러에서 석탄이나 석유를 태워 열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핵분열을 일으켜 발생되는 열을 이용하여 물을 끓인다는 점이 다르다.

핵분열이란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이 중성자를 흡수하여 둘 또는 셋으로 조각나는 현상을 말한다. 핵분열이 일어나면 우라늄은 간데없고 다른 원소들이 생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잉여중성자가 나와 반응을 지속시킬 수 있어 끊임없이 핵분열 반응이 지속되는 것을 핵분열 연쇄반응이라 일컫는다. 사실 하나의 핵분열이 일어날 때 발생되는 열량은 아주 적으나, 연쇄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발생되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인간이 제어할 수준을 넘게 될 수 있으며, 아무 조절하지 않고 가만 두면 그것이 바로 핵폭탄이 된다. 한 번의 핵분열이 일어나면 두 개 이상의 잉여중성자가 나오는데 이 중성자로 인해 새롭게 두 번 이상의 핵분열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단계에서는 4번 이상의 반응, 그 다음에는 8번 이상으로 핵분열 반응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발생하는 에너지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연쇄반응을 지속하면서 잉여중성자를 하나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없애버린다면 다음 단계에서 핵분열은 하나만 일으키게 되며, 이런 조절을 매 연쇄반응마다 할 수 있다면 에너지는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 핵분열 연쇄반응은 알았다, 연쇄반응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닌가?

 ≫ 우라늄에는 두가지가 있다. 자연에서 존재하는 우라늄-238, 그리고 실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우라늄-235가 있다. 우라늄-235는 자연에 1/140 정도로 극히 적은 양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원자로에는 우라늄-238이 95.5%의 비율로 들어가게 된다. 우라늄-238은 핵분열을 할 수 없어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려면 반드시 그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우라늄-235가 바로 그것이다. 우라늄-238은 핵분열을 할 수 없지만 우라늄-235의 희석제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폭탄과 원자로에 들어가는 우라늄은 똒같이 우라늄이라고 칭하지만 그 성분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자로에서는 일부 출력이 갑자기 증가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정도의 자연 우라늄을 섞어 쓴다고 보면 된다. 우라늄-238도 폭발할 수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의 예로 우라늄 원광이 있는 지역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 스스로 폭발하는 경우는 아직 한 번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원전은 관리가 정상적으로 잘 된다면 결코 스스로 폭발될 수 없다.


■ 방사선의 종류와 그 위험성, 그리고 활용

 ≫ 방사능과 방사선이 있다. 방사능(Radioactivity)은 정성적으로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내는 강도를 뜻하며, 정량적으로는 방사성 물질에 들어있는 불안정한 핵의 양을 말한다. 방사선(Radiation)이란 방사능을 가진 원자에서 발생하는 빛 또는 물질이다. 몸을 투과하면 분자와 공명하여 세포를 파괴시키거나, DNA 혹은 RNA의 수소결합을 절단하여 유전자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킨다. 일반적인 노출은 인체에 해가 되지만 이를 집중하여 쬐면 종양 등을 파괴하고 유전자를 변형시킬수 있는 수단이 된다. 약한 상호 작용에 의해 원자가 붕괴하면서 나온다. 즉, 방사선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해가될 수 있고 득이 될 수 있겠다. 이러한 방사선에도 좋류가 있는데, 아래와 같겠다.

 1. 첫번째로 이온화 방사선이라고 있다. 보통 방사선이라고 하면 이온화 방사선을 말한다. 이온화 방사선은 인공적 또는 자연적인 핵반응에 의해 발생되며, 번개에서 초신성 폭발 등 자연적 과정에서 생성된 전자기장에서 전이된 입자의 가속 등에 의해 발생한다. 이온화 방사선은 환경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과 우주선으로부터 온다. 보통 인공적인 근원으로는 인위적으로 생성된 방사성 동위 원소들, X-선관, 입자 가속기 등이 있다. 이온화 방사선은 보이지 않으며, 인간의 감각으로는 직접적으로 탐지되지 않아, 이온화 방사선이 있는지를 감지하려면 가이거 계수기와 같은 장비가 필요하다.

 2. 두번째로 알파선이 있다. 알파선은 낮은 투과율로 피부를 통과하지 못하나 채네에 유입되면 유해성이 매우 높아진다. 예를 들면 상처난 피부, 호흡, 경구섭취[각주:1] 등이다. 알파선은 높은 이온화 특성을 지니는 입자의 하나이다. 알파 입자는 우라늄이나 라듐과 같은 방사성 물질이 알파 붕괴를 하는 도중에 방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때로는 원래의 원자핵이 들뜬 상태에 놓이기도 하며, 남는 에너지는 감마선 방출을 통해서 방출되기도 한다. 알파 입자는 전하와 무거운 질량 때문에 쉽게 물질에 흡수되며 공기 중에서는 몇 센티미터 밖에 나아가지 못한다. 휴지 한장에도 흡수되며 사람의 외피층(약 40 마이크로미터, 몇 개 가량의 세포 두께)에도 흡수된다. 이러한 이유로 먹거나 흡입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는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무거운 질량 및 강한 흡수성 때문에 일단 체내에 진입하게 된다면 가장 위험하기도 하다.

 3. 세번째로 베타선이 있다. 몇몇 방사능 핵종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 고속의 전자나 양전자 입자를 베타 입자라고 한다. 이 베타 입자로 방출되는 것을 베타 광선(베타선)이라고 한다. 베타선은 중간정도의 투과력과 중간정도의 이온화능력을 가진다. 대부분의 베타입자들은 수mm의 알루미늄으로 차단시킬 수 있으며 베타선은 알파선보다 이온화가 강하다. 베타 입자들은 눈이나 뼈의 암 등 건강을 다루는데 쓰이고, 인체 내부 관찰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베타 입자들은 물질들을 관통하여 분자구조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암이나 죽음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DNA의 분자구조가 변형된다면 돌연변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또한, 베타입자들은 암세포를 죽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4. 네번째로 감마선이 있다. 방사능 및 전자와 양전자가 충돌하여 없어질 때 감마선이 생성된다. 감마선은 알파선과 베타선에 비해 투과성이 높으며 화상, 암, 유전자 변형과 같은 피해를 유발한다. 핵전쟁등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핵무기의 낙진에서 발생하는 감마선은 수많은 사상자를 유발한다. 보통 감마선을 차폐[각주:2]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질이 필요하다. 감마선의 에너지가 높을수록 더욱 두꺼운 차폐물이 요구된다. 감마선의 강력함은 박테리아 제거 등을 통한 의료기기의 살균에 유용하게 쓰인다. 또한 음식물, 특히 육류나 채소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박테리아나 벌레를 제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감마선은 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5. 다섯번째로 중성자선이 있다. 중성자가 빛처럼 나아가는 방사선의 종류 중 하나이며 핵반응시에 나오므로 원자로를 가동할 때나 중성자폭탄이 폭발할 때도 나온다.

 6. 여섯번째로 엑스선이 있다. 엑스선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가 무거운 원자에 충돌할 때 발생한다.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 처음 발견하여 이름붙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라 뢴트겐선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엑스선은 주로 의료용 엑스선으로 투시검사, 혈관조영 검사, CT검사 등 여러분야에서 사용된다. 또한 산업 및 기타용도로 부품이나 용접 부분에 엑스선 촬영을 실시해 부품, 용접 부위의 무결성을 검사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 공항 수하물 스캐너는 수하물의 내부를 엑스선으로 쪼아 투영함으로써 위험 물질이나 무기 등을 찾을 수 있었다. 엑스선은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이기 때문에 물질을 잘 통과한다. 엑스선을 이용하여 물질의 구조를 결정하거나 인체 내부의 이상을 알아보는 등 응용 범위는 매우 넓다.


■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장치

 ≫ 원자력 발전소 안전설계의 근본적인 개념은「심층방호(Defense in Depth)」이다. 여러 겹의 방어선을 설치하여 고장 즉 이상상태가 더욱 확대된 결과 발생되는 사고(Accident)를 각 방어선에서 막도록 하되 어느 하나가 실패하면 그 다음 방어선이 막는다는 개념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정상운전 상태를 벗어나서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반적인 이상(異常)상태는 원자로 긴급정지로써 사고로 확대됨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지만, 긴급정지만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사고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원자력 발전소 최악의 가상사고인 원자로 냉각재 상실사고 등이 있다. 냉각재가 부족하여 노심이 녹아 손상되는 등은 긴급정지로 막을 수가 없다. 대표적으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이유 그리고 그 과정 #1에서 다루는 이유가 냉각재 상실사고와 연관이 있다. 이러한 만약에 상황이 발생하여 냉각능력을 상실하더라도 원자로 바깥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탱크에서 자동으로 비상용의 냉각재 및 중성자 흡수물질인 붕산수를 함께 원자로 내에 공급하여 핵분열 반응을 중지시킴과 동시에 과열된 핵연료를 냉각시켜 방사성 물질의 근원인 핵연료봉의 손상을 방지해준다. 그 외에 원자로 냉각재 주요 배관이 절된되는 경우 고압안전주입 장치가 작동하고 있어서 안전주입탱크 및 저압안전주입장치가 순차적으로 작동되어 원자로 내에 붕산수를 공급하여 과열된 노심을 냉각시키게 된다. 또한 냉각재 계통의 주요 배관이 약간만 파손되어 원자로내의 냉각수 물이 서서히 감소되더라도 먼저 고압안전주입장치가 작동하고 원자로내의 압력이 점차 감소하여 물이 끓게 되어 핵연료봉의 냉각이 어려워지면 이어서 안전주입탱크, 저압안전주입장치가 차례로 작동하여 과열된 노심을 냉각시킨다.

 ≫ 그 외에도 격납용기 압력강하장치라고 하여 고온, 고압의 원자로 냉각재가 파열부위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 나오면 순간적으로 증발되어 매우 큰 압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원자로 천정에 분무 장치를 두어 격납용기의 압력이 상승하여 일정 한계치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붕산수를 분사시켜 수증기를 응축시킴으로써 인체에 유해한 방사성 기체를 제거한다. 이러한 심층방호 구조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방어선에서 막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 결정적 문제는 이러한 긴급노심냉각장치 등을 사용자가 수동으로 꺼버리는 사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이유 그리고 그 과정 #1에서 관련 내용을 다룬다.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에서는 실험을 위해 연구원이 긴급노심냉각장치를 꺼버린다.



■ 아래는 방사능의 안정성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가져왔다.

 ≫ 사실 본 내용은 방사능의 위험성도 소개하지만, 본 주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은 함정본 내용에 관심있게 읽었다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www.karc.or.kr/pds/data/1351743489_02.pdf, http://tip.daum.net/question/3612172

그 외 방사선,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중성자선, 엑스선 등의 위키백과



  1. 경구섭취 : 방사성 물질이 체내로 섭취되는 경로의 하나로 입에서 소화기관에 들어가는 것. [본문으로]
  2. 차폐 : 가려막아 덮음 [본문으로]

산업화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력원이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석탄, 석유, LNG 등과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화석연료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화력발전량을 점차 줄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산업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즉 동력원이 필요한데, 마땅하게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원자력이라는 ‘제3의 불’을 도입하여 경제발전을 위 한 주 동력원의 역할을 맡겼다. 부존자원이 전혀 없는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 원자력발전을 도입하여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의 길을 열 수 있었고, 아 직도 성장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당분간은 주 동력원인 원자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보인다. 원자력에너지는 많은 장점이 있다.


■ 원자력 발전의 장점

 ≫ 우선 경제성이 뛰어 나고, 수송이 용이하며, 환경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라는 점 등입니다.

 1.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대규모의 에너지수요 증가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수안이며 현재 다른 대안이 없는데, 화석연료의 대량사용으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CO2), 황산화물(SOx),질소산화물(NOx)등이 지구온난화와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인데 만약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 감소를 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1위이며 총 에너지소비 중 화석연료의 비중이 80% 이상인 우리의 에너지인 다 소비형 산업구조에서는 전 산업분야에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속되는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소비 증가율 10% 이상인 점을 감안할 때 당장 석유나 석탄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 대신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체에너지로는 소비하더라도 다시 재 생성되는 재생에너지(자연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가 있는데 태양열,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소용량이며 지리적, 지형적조건의 제한으로 아직 실용단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대규모의 에너지수요 증가에 대처할 수 있는 에너지로는 원자력발전으로서 원자력발전은 연료채굴에서 폐기물처리까지 전과정에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수력발전 수준으로 극히 낮을 뿐만 아니라 산성비의원인이 되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을 배출하지 않는 대표적인 환경 친화적 에너지입니다.

 2. 또 다른 이견으로는 연료 공급의 안정성과 비축효과가 있는데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세계 전역에 고르게 매장되어 있어 세계의 에너지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반면에 석유의 경우 대부분이 중동지역에 편중되어 있어 유사시 공급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료인 농축 우라늄만을 수입하여 원전연료 형태로 제작할 수 있는 가공 공장이 있어 중국산 연료로 안정적인 연료공급이 가능합니다. 또한 우라늄은 에너지밀도가 매우 높아 소량의 연료로 막대한 에너지를 낼 수 있어 수송과 저장이 쉽습니다. 예를 들어 100만 kW급 발전소를 1년간 운전하려면석유로는 150만 톤이 필요하나 농축우라늄은 28톤이면 됩니다. 우라늄은 원자로에 한번 장전하면 18개월 가량은 연료를 교체하지 않으므로 그만큼 연료의 비축효과가 있는 셈입니다.이와 같이 다른 에너지원들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공급이 불안정한 반면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공급의 안정, 수송 및 저장의 편리, 큰 비축효과가 있어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에너지 자립이라는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원자력은 꼭 필요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또 다른 장점은 고도기술의 준국산 에너지입니다. 원자력발전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에너지로서 기술자립만 이룩되면 무한한 개발과 이용이 가능합니다. 특히 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인 원전의 기술자립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우리나라에서 원전은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에너지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70년대 초 당시 아무런 기술과 경험 없이 원전건설을 시작하여 78년 4월 고리1호기가 최초로 가동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10위권에 들어 가는 원전 선진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현재 원자력발전은 건설 및 운영분야 모두 거의 기술자립단계에 있어 우리기술로 건설하고 있고, 세계 정상수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체 발전원가 중 연료비 비율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준 국산에너지입니다. 에너지 소비절약, 에너지소비 산업의 구조조정, 대체에너지의 이용증대로 에너지 수입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원자력은 고밀도 기술에너지로 원자력발전의 확대는 그 만큼 화석연료의 수입을 적게 해줌으로써 에너지수입 대체효과(외화절감)가 매우 큽니다. 이 블로그의 [세계가 일본된다] 암울한 세계 경제를 요약한 책 라는 책에서 원전의 경제적인 측면을 확인할 수 있고, 원전사고로 인한 일본경제의 타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자력발전 기술은 하이테크 산업으로 모든 관련 사업으로 모든 관련 산업분야의 기술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4. 다음 장점은 유리한 경제성입니다. 원자력발전은 연료가 싸기 때문에 발전원가 중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고 발전원가도 낮아 경제성에서 훨씬 유리합니다.원자력발전은 화력발전같은 다른 발전방식에 비하여 건설비가 많이 들어 초기 투자비는 높지만 발전소 수명기간(약 40년)동안 사용하는 연료인 우라늄이 석유나 천연가스에 비해 월등히 싸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인 발전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은 연료가 싸기 때문에 발전원가 중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고 발전원가도 낮아 경제성에서 훨씬 유리합니다.원자력발전은 화력발전같은 다른 발전방식에 비하여 건설비가 많이 들어 초기 투자비는 높지만 발전소 수명기간(약 40년)동안 사용하는 연료인 우라늄이 석유나 천연가스에 비해 월등히 싸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인 발전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나라는 에너지원(석유, 석탄, 천연가스)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특히 필수 에너지이자 가장 편리한 에너지인 전기는 그 소비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어 발전 설비를 계속해서 늘려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원자력발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입니다.


■ 원자력 발전의 장점 요약

 1. 원자력 발전소는 에너지 자립의 초석이다. 그리고 에너지 자립은 국력을 좌우한다.

 2. (사고가 발생하지만 않는다면)원자력 발전소는 환경 친화적 에너지이다.

 3. 원자력 발전소는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이며 모두 국산화가 가능하여 고도기술을 선도한다. 북한 원전 또한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된 한국표준형 원전을 통해 기술자립을 이룩했다

 4. 원자력 발전은 안정적인 연료공급 에너지이다. 연료인 우라늄은 세계 전역에 고르게 매장되어 있다.

 5. 원자력 발전은 매우 경제적이다. 다른 발전방식에 비해 건설비가 다소 비싸지만 40년 이상의 운전기간 동안 사용되는 우라늄이 석유나 천연가스에 비해 월등히 싸다.


■ 원자력발전의 단점

 1. 태생적으로 위험적입니다. 현 세대의 모든 산업용 원자로들은 본래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 또는 핵잠수함이나 다른 군함 추진체를 개발하기 위한 디자인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들 원자로의 수명, 규모, 설계 유형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안전에 있어 매우 심각한 본질적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원자력산업계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능 물질과 방사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들은 태초부터 존재해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원자력발전, 원자폭탄의 실험, 생산 및 사고를 통해 인류는 기존에 없었던 방사성물질을 만들어냈고, 이제는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또 다른 단점은 원전사고의 위험입니다. 어떤 원전에서든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인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원전은 심지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방사성물질을 대기와 수중으로 방출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데 반대하는 흐름이 형성되자 원전 업계는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전이 노후되면 그 위험성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노후 원전의 수명이 연장 되어서는 안 되며 안전을 위해 폐로 되어야 합니다.

 3. 또 다른 단점은 핵 폐기물입니다. 핵폐기물은 우라늄 채광 및 농축, 원자로 가동,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등 핵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생산됩니다. 이 같은 핵폐기물의 대부분은 미래세대에 유독성 유산으로 수십만 년 동안 존재하게 됩니다. 폐쇄되는 원전 또한 대량의 핵폐기물을 만들어냅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원자력발전소가 운영을 중단한 이후에도 수 세기 동안 모니터링과 보호조치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 마지막으로 핵 확산 위험입니다.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는 모든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는 모든 국가가 잠재적으로 핵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한 셈입니다.




출처 : 

http://www.greenpeace.org/korea/campaigns/climate-energy/nuclear-phase-out/problems/


※ 1과 2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원인과 이유 그리고 노심과 제어봉에 대한 설명을 접할 수 있습니다.

■ 1986년 4월 26일 사건 그 이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처리 : 화재 진압과 방사능의 긴급 누출 방지

 
(폭발직후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당시 수석 엔지니어 알렉산드로 아키모프)

 ≫ 체르노빌 발전소의 발전기는 4기가 있었고, 그 중 2기는 추가로 짓고 있던 중이었다. 폭발의 여파로 4호기의 잔해와 3호기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1986년 4월 26일 사고 직후 소방대원들이 파견되었다. 사고 직후인 1시 28분에 우선 알렉산드르 아키모프가 지휘하는 14명의 소방대원이 파견되어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하였고, 오전 4시 경에는 레오니트 텔랴트니코프가 지휘하는 250명의 대원이 추가로 파견되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오전 2시 10분에는 기계동 천장의 가장 큰 불이 진압되었고, 2시 30분에는 폭발한 반응로 건물 천장의 화재 또한 진압되었다. 오전 5시에는 반응로 주변에 일어난 대부분의 화재가 모두 진압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아무도 폭발이 일어난 반응로 근처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반응로의 잔해가 계속 불타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사고 후 처음 20시간 동안 소방대원과 발전소 직원들의 화재 진압 시도로 인해 뿌려진 물이 기화하여, 반응로 주변은 증기로 가득한 상태였다. 이 증기는 가열된 흑연이나 반응로 내부의 지르코늄과 같은 다른 물질과 반응하여 수소 가스를 비롯한 많은 가연성 물질들을 만들어냈다. 이 가연성 물질들은 사고 발생 후 약 20시간이 지난 4월 26일 오후 9시 41분에 반응로의 잔해를 폭발시켰다. 폭발의 여파로 만들어진 불기둥은 거의 50m에 달할 정도의 규모였다. 

 ≫ 이 화재를 진압하고 화재로 인한 방사능의 누출을 막기 위해 5월 5일까지 군용 헬리콥터 30대가 동원되어 여러 물질들이 투하되었는데, 이 물질들은 중성자를 흡수하여 연쇄 반응을 막기 위한 40톤의 붕소 화합물, 열을 흡수하고 이산화 탄소를 발생시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돌로마이트 600톤, 방사능 차폐를 위한 2400톤의 납과 1800톤의 모래와 진흙 등이다. 동원된 헬리콥터와 그 조종사의 방사능 피폭을 줄이기 위해, 헬리콥터들은 폭심의 바로 위에 멈춰서지 않고 반응로를 날아서 통과하면서 투하물들을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투하물 중 일부는 목표인 노심을 빗나가 그 주변에 떨어졌으며, 이렇게 주변에 떨어진 투하물들은 반응로 내부의 열을 흡수하지 못하고 잡아두는 역할을 해 반응로의 온도를 높이고 방사능의 추가 누출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추측된다. 헬리콥터에 의한 화재 진압 시도는 5월 7일까지 지속되었으나, 폭발로 인해 건물의 구조가 약화되어 추가 폭발 또는 노심 용해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5월 10일까지 중단되었다. 헬리콥터에 의한 시도가 중단된 이후에는 원자로 3호기에 있던 액체 질소를 노심에 주입해 5월 9일 반응로의 화재가 마침내 진압되었다.


■ 소련정부의 사고 공표
 ≫ 소련 정부는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던 1986년 4월 26일 아침에, 사고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1,200 km 떨어진 스웨덴의 포스막 원자력 발전소에 출근한 과학자의 의복에서 포스막 발전소에서는 발견된 전례가 없는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4월 27일과 28일에는 정상 수준보다 6배 이상 높은 방사능이 스웨덴뿐만 아니라 핀란드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여러 지역과 덴마크에서 검출되었고, 스웨덴 정부는 대기 상황을 고려하여 이 물질이 소련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측하고 소련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였다. 소련 정부는 관영 통신사인 타스를 통하여,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각과 피해자의 수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4월 28일에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하였다.


(원전 4호기를 상공에서 찍은 당시 사진)

 ≫ 소련 정부가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사고 규모와 사망자 수에 대한 소문이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퍼졌다. 사고가 처음 공표된 4월 30일경에는 사망자수가 2천 명에서 3천 명에 이른다는 추측성 기사가 보도되었고, 사고 원인도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비슷한 노심용융으로 추측되고 있었다. 소련 정부는 타스 통신을 통해 4월 30일에 이 같은 추측을 부인하고, 방사능 누출로 인해 입원한 환자 수를 밝혔다. 서구 기자들의 취재 요청이 있었지만, 소련 정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이후 스웨덴 정부 등에 공식적으로 화재 진화를 위한 소방관 파견과 방사능 오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지원 등을 요청하였고, 같은 시기에 미국의 첩보 위성 등이 심각하게 손상된 원자로를 확인하면서 사고가 매우 심각한 규모라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소련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5월 6일에 이르러서였다.

■ 소련의 방사능 제거를 위한 노력
 ≫ 방사능의 누출을 막기 위한 최초의 조치로 냉각 장치를 내장한 콘크리트 판을 4호기의 지하에 설치하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이 판들은 고온의 노심을 냉각시키려는 목적과 함께, 노심의 열에 의해 용융된 액체 상태의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로 흘러드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이 작업은 약 400명의 작업자에 의해 15일간 진행되었다 콘크리트 판 설치가 완료된 후, 지상에 노출된 노심에 남아있는 핵연료와 방사성 물질에 의한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하여, "석관"(sarcophagus)이라 불리는 콘크리트제 봉인 시설을 건설하는 작업과, 사고 지점 근처에 있는 댐과 호수의 방사능 오염 제거 등의 작업이 먼저 시작되었다. 이 작업에는 약 22만 6천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였다. 호수의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은 1986년 9월경에 완료되었으며, 봉인 시설은 11월에 완공되었다. 이 작업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남아있는 원자로 시설과 발전소 진입로, 그리고 그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제거 또한 이루어졌다. 이 작업은 1987년까지 계속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방식이 사용되었다.
1. 오염된 시설의 표면과 장비에 액체와 모래, 증기 등을 분사하여 오염 물질을 청소
2. 오염 지역의 표토를 제거하고 매립
3. 오염된 시설의 표면을 고분자로 코팅한 후 제거함으로써 고분자에 붙은 먼지 입자 등의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
4. 도로와 기타 아스팔트 포장된 구역의 재포장

■ 폭발현장에서의 시민 희생 : 키예프 시가지지역의 방사능 노동절 축제

(키예프 시가지의 방사능오염수치를 나타낸 표시 : 붉은색은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

 ≫ 폭발현장의 화재를 진압하기위해 소방관들이 보호장구도 없이 급파되어 화재를 진압하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원자로의 화재는 쉽게 진화되지 않았고 투입된 소방관들 2명은 그날 저녁에 사망했다. 나머지 28명도 모두 몇개월 안에 치사량의 피폭때문에 사망한다. 가공할 방사능오염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온 유럽을 뒤덮었다. 체르노빌의 당사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도 오염되었다. 


 ≫ 5월은 공산국가의 가장 큰 기념일중 하나인 메이데이(노동절) 축제가 있고 소련은 심각하게 오염된 키예프에서 노동절축제를 강행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사태가 심각하지 않다는 믿음을 주어 사람들의 패닉을 잠재우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정상치의 수천배가 넘는 방사선수치 속에서 강행된 노동절 축제기간중 수많은 사람들이 피폭되었고 관련통계는 거의 집계발표되지도 않았다. 또한 1986년의 노동절 축제 관련 기록사진 및 필름은 우크라이나 국립 기록 보관원에서 모조리 삭제되었다.


 ≫ 사태 발생 초기에 붕산 모래 혼합물 투하작전에 투입된 소련병사. 평균연령 20대였던 소련군인들은 대부분 작업후에 피폭후유증으로 며칠 못넘기고 모스크바 6호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중 27명은 빠르게 죽었다.

 ≫ 2차 폭발의 위험이 제거된 후 소련군이 복구작업에 투입된다. 엔지니어인 레프 볼차코프가 설계한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의 석관을 4호기 위에 덧씌우는 작업에 대량의 공병차량과 크레인, 불도저가 투입된다. 작업원들은 피폭을 최대한 줄이려고 운전석에 납으로 된 판을 부착해 급조하고 작업시간을 최대한 줄여 피폭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작업중 난관에 부딪치는데, 폭발한 원자로의 흑연이 4호기 지붕위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각각의 파편들은 제각각 시간당 500~1500 뢴트겐을 뿜어대고 있었고 이런 극한의 상황에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로봇을 투입해서 제거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강렬한 방사선속에서 작업하던 로봇들의 회로가 망가져버려서 결국 사람을 투입하기에 이른다. 이런 환경에 인간을 보낸다는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미친짓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투입된 병사들을 바이오 로봇이라고 불렀다.

■ 폭발현장에서의 시민 희생 : 니콜라이 타라카노프장군의 기록필름


(니콜라이 타라카노프 장군)

 ≫ 수습작전을 지휘한 니콜라이 타라카노프 장군. 그가 부하들을 방사능지옥에 투입하면서 한 말이 기록필름으로 남아있다.


 : 동무들, 자네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해


 : 이틀 전에 내가 한 장교와 함께 저 지붕위로 올라가봤는데,


 :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된 것은


 : 저 위쪽에 올라가봐도 별로 두려워 할 것은 없다는거야.


 ≫ 그들은 시간당 10000 릔트겐의 방사선에 피폭되었고, 병사들은 방사능덩어리들을 삽으로 떠내거나 맨손으로 집어서 옮겨야 했다. 각각의 파편들은 시간당 1500뢴트겐을 뿜어댔고, 이렇게 폐기물들을 쥐고 있던 병사들은 곧 손에서 대단한 통증을 느꼈으며 나중에는 주먹을 쥘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체르노빌 추가 피해는 많은 시민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막을 수 있었다.


출처 : 체르노빌의 진실(http://m.jjang0u.com/chalkadak/view?db=160&no=177100)

,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사고 위키 : https://ko.wikipedia.org/wiki/%EC%B2%B4%EB%A5%B4%EB%85%B8%EB%B9%8C_%EC%9B%90%EC%9E%90%EB%A0%A5_%EB%B0%9C%EC%A0%84%EC%86%8C_%EC%82%AC%EA%B3%A0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이유 그리고 그 과정 #1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 사고 그 사건,사고의 진실 그리고 시민들의 희생 #3


■ RBMK 이해전에 숙지

: (제어봉)

 ≫ 원자로는 연쇄핵분열 반응을 통해 열을 생산하는데, 제어봉은 연쇄핵분열의 매개체인 중성자를 흡수해 연쇄핵분열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이다. 제어봉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물질들은 중성자의 에너지 변화에 따라 중성자 포획 능력이 달라지므로, 제어봉 집합체는 원자로의 다양한 중성자 에너지 영역에 맞추어 설계해야 하며, 보통 은, 카드뮴, 붕소, 인듐이 재료가 된다.

 : (노심)

 ≫ 원자로의 핵연료를 담고 있는 원자로의 부품으로, 핵반응이 일어나는 곳이다. 노심 안에는 핵 연료와 제어봉 있고, 냉각재가 상실되면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체르노빌 사고와 관련 있음), 노심에 핵분열로 생긴 열이 쌓이면 노심의 구조물이 녹거나 파손되는데 그 자체가 파손되어 방사성 물질이 주위에 확산될 수 있다.



■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RBMK)

 ≫ RBMK 또는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黑鉛減速沸騰輕水壓力管型原子爐)는 소비에트 연방이 개발한 원자로 형식으로, 러시아어 Реактор Большой Мощности Канальный(영어: Reaktor Bolshoy Moshchnosti Kanalniy, 채널형 고출력 원자로)의 첫글자를 따서 RBMK라고 부르며, 현재는 소비에트 연방[각주:1]이 만든 흑연감속 원자로의 뜻으로만 사용된다. RBMK는 체르노빌 사고를 일으킨 원자로 유형이며, 2004년 현재 더 이상의 건설계획은 없으며 체르노빌의 마지막 RBMK는 2000년까지 폐로되지 않았고, 2012년까지 적어도 11개의 RBMK 반응로가 러시아에서 운영되고 있다

 ≫ RBMK는 소련의 플루토늄 생산용 원자로를 기반으로 한 원자로를 만드는 소련의 프로젝트 중 최고의 작품이었다. 세계 최초 원자력 발전소(최초로 원자로에서 전력생산)에 쓰인 첫 번째 RBMK인 AM-1은 5MW의 전력(열효율 30MW)을 오브닌스크[각주:2]에 1954년부터 59년까지 공급했다.

 ≫ RBMK는 경수[각주:3]를 냉각재로 감속재[각주:4]로 흑연[각주:5]을 사용하며, 연료로는 천연우라늄을 사용할 수 있으며(일반적으로 2.4%의 농축우라늄을 사용한다), 압력관 갯수만 늘리면 원자로를 크게 만들수 있고, 또한 운전중 연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운전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 대신, 다른 원자로 유형에 비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 RBMK의 설계

 ≫ RBMK는 흑연 감속재를 통과하는 7m 가량의 압력튜브로 되어있으며,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데 비등수형 원자로와 비슷한 온도인 290°C 정도로 비등한다. RBMK의 연료는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며, 3.5 미터 길이의 연료집합체에 장착한다. RBMK는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하기 때문에 엇나갈경우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재앙이 일어날수 있다.

 ≫ 일반적인 RBMK의 노심에는 3000개의 연료 집합체를 넣을 수 있다. 연료집합체는 우라늄 산화물 펠릿[각주:6]으로 가득찬 연료봉의 집합으로 되어 있으며, 밑부분에는 연료봉의 버팀목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시켜 주는 금속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심은 연료집합체에서 끌어낸 열 에너지를 잠시 저장해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자로가 가동하면, 연료속의 235U가 연쇄반응을 내면서 줄어들게 된다. 몇몇 238U원자들은 여분의 중성자를 얻어 분열가능한 플루토늄으로 변화하여 에너지를 낸다. 이 반응으로 세슘이 생성되며, 이런 세슘은 연쇄반응과 열생산을 저해시킨다. RBMK는 운전중 연료교환이 가능하여, 다른 원자로에 비해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 RBMK의 안정성

 ≫ RBMK의 디자인은 정상 운전, 그리고 비상시 상황에 필요한 몇몇 안전 시스템이 있다. 그중 하나는 노심 출력을 감시하는 피드백 센서로, 출력이 증가할시 자동적으로 제어봉을 노심에 삽입하여 출력을 낮추고, 반대로 출력이 낮아질시엔 제어봉을 인출하여 출력을 높인다. 만약 이 센서가 갑자기, 과격하게 출력이 오르는걸 감지하면, 211개의 붕소 제어봉이 노심으로 들어가 반응을 중단하는 원자로 보호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필요로 하거나, 혹은 운전원에 의해 자동적으로 실행된다.

 ≫ RBMK 원자로는 발전소와 주변환경의 방사선을 감시하는 방사선 모니터링 관측소가 있으며, 매우많은 차폐벽이 방사선을 흡수하고, 일반 운전과 비상 상황 모두를 포괄한다. 그리고 또한 RBMK은 사고 국부화 시스템이 있는데, 이 시스템은 격리에 도움이 되나, 이 시스템은 오직 약간의 국소 파이프 고장에만 도움이 되었고, 체르노빌 사고에선 무용지물이란걸 보여줬다.


■ 체르노빌 사고 이후 개선

 ≫ 체르노빌 사고이후, 모든 운영중인 RBMK는 여러 안전조치를 추가하였다. 제일 크게 바뀐곳은 RBMK의 제어봉 설계였다. 예전 제어봉 설계는 흑연 감속재의 위에 있어서, 연쇄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제어봉을 삽입하면 제어봉은 흑연에 걸려 느리게 내려가거나 혹은 멈춰있는 경우가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에서는 이 하자로 인해서 체르노빌 원자로의 첫 번째 폭발을 도왔다. 새로 바뀐 개선점은 다음과 같다.

  1. 연료 농축률을 2%에서 2.4%로 높였다. 이로 인해 중성자 흡수율이 높아져 원자로 제어의 신뢰성을 높였다.
  2. 수동 제어봉 갯수가 30에서 45개로 늘어났다.
    (수동 제어봉 개수에 대한 문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이유 그리고 그 과정 #1에서 다룬다)
  3. RBMK 설계가 위험하기 때문에, 80개의 추가 중성자 흡수재가 저출력을 억제한다.
    (저출력 관련 문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이유 그리고 그 과정 #1에서 다룬다)
  4. SCRAM (원자로 긴급 정지) 시간을 18초에서 12초로 단축시켰다.
  5. 예방책으로 긴급 안전시스템에 승인되지 않은 접근을 대비하였다.

출처 :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https://ko.wikipedia.org/wiki/%ED%9D%91%EC%97%B0%EA%B0%90%EC%86%8D_%EB%B9%84%EB%93%B1%EA%B2%BD%EC%88%98_%EC%95%95%EB%A0%A5%EA%B4%80%ED%98%95_%EC%9B%90%EC%9E%90%EB%A1%9C)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이유 그리고 그 과정 #1


  1. 소비에트 연방 : 러시아(구 소련의 명칭) [본문으로]
  2. 오브닌스크 : 러시아 서부, 칼루가 주 북동부의 도시. 모스크바 남서쪽에 위치. 인구 10만 8000명. 1955년 러시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 곳. [본문으로]
  3. 경수 : 보통의 물을 상대하여 이르는 말. [본문으로]
  4. 감속재 :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연료체로부터 방출되는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물질. [본문으로]
  5. 흑연 : 수정과 같은 결정구조를 가지는 육방정계에 속하는 광물로 석묵이라고도 한다. 흑색을 띠며 금속광택을 가진다. 전기의 양도체, 연필심·도가니·전기로·아크 등의 전극 등에 사용되며 활마재로도 사용된다. [본문으로]
  6. 펠릿 : 원자로에 쓰는 산화우라늄이나 산화플루토늄 가루를 원기둥 모양으로 만들어 고온에서 구워 굳힌 것. 이것을 헬륨 가스와 함께 피복관(被覆管)에 밀봉한 것을 ‘연료봉’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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