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말씀

 ≫ 노무현 대통령께서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 기사가 있다면, 댓글로 출처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증거는 없었고 모두 거짓이라는 기사와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2015년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의해 밝혀졌지만, 대검찰청에 억대의 피아제 시계 뇌물 논란 또한 국정원의 대국민 망신주기 언론 플레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는 시민만을, 약자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 묘소


■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뇌물수수혐의 수사 도중 국정원의 모욕주기 언론플레이에 고통받았다. 사망 이후에도 인터넷 여론공작으로 고인 모독을 당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로 뇌물을 받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진짜로 차명계좌를 통해 비리를 저질렀을까? 그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 노무현 대통령의 차명계좌

 ≫ 조현오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2010년 3월 일선 기동대장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날 10만 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에 이르렀고, 권양숙 여사가 특검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 부탁했다"는 허위 발언을 했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 검찰이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문화일보가 2010년 8월 19일 보도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날 “(차명계좌 존재 여부 확인에 대해) 하나하나 들여다보겠다”며 “아직 사건이 접수만 됐고 2010년 8월 19일, 검토해서 배당할 것”이라고 신문에 말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2012년 9월 대법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 대해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차명계좌 설은 결국 "찌라시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수감 8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조현오 전 청장은 이후 재판과정에서 발언의 출처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거나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했다.


2010년 3월 31일 당시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동부대 지휘요원 398명을 대상으로 열린 특별교양 강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시점에 나온 그의 발언에 여론의 시선이 집중됐다. 서울경찰청장은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뭐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뭐 때문에 뛰어내렸습니까? 뛰어버린 바로 전날 계좌가 발견됐지 않습니까, 차명계좌가? 10만 원짜리 수표가 타인으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표돼, 발견이 됐는데, 그거 가지고 아무리 변명해도 변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거 때문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겁니다."


관련기사 : 검찰 "노무현 차명계좌 존재하는지 들여다보겠다 2010년 8월 19일 기사

관련기사 : 대법원 '노무현 명예훼손' 조현오, 실형 확정... 왜? 2014년 3월 13일 기사


■ 동아일보의 노무현 죽이기 결국엔 가설.

 ≫ 검찰이 조 전 청장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하기 직전인 2012년 5월 <동아일보>는 "조현오 前 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까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기사에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어느 은행에 누구 명의로 돼 있는지 검찰에 출석해 모두 까겠다'고 말했다"며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를 둘러싸고 커다란 정치적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또 다음 날인 5일에도 "'조현오 파일 실체' 존재한다면 대선판 전체 흔들 '뇌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조현오 파일'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조 전 청장이 검찰에서 '노무현 차명계좌'의 객관적 근거를 제시한다면 야권의 대선 후보 구도는 물론이고 대선판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근거로 작성됐다.


관련기사 : 조현오 前 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까겠다 2012년 5월 4일 기사


■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 후, 그리고 뇌물 수수

 ≫ 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퇴임 후 전임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고향 김해시 봉하마을로 귀향하였다. 이후 사람사는세상 사이트를 운영하며, 봉하마을 촌장으로 재임하는 등, 민중들과 교류를 추구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차별 논란에도 불구하고 재임시절 친인척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할 정도로 친인척 비리를 경계했으나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박연차 게이트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세종캐피탈 사장 사이의 세종증권 매각 사건을 조사하던 중 박연차가 수 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해온 것이 밝혀진 비리 사건이다. 검찰은 박연차가 노 전 대통령에게 15억 원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차용증을 제시하였고, 사저신축비 용도로 빌린 개인 간의 금전 거래로 판단하여 무혐의 종결 되는 등 비리를 매우 경계했다. 이후 박연차가 권양숙 여사에게 건낸 100만 달러(약 10억-13억원 정도), 정상문에게 건낸 3억 원, 연철호에게 건낸 500만 달러에 대해 수사가 이루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임기중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에게 100만 달러와 3억 원을 요구하여 돈을 받은 것을 시인하였는데, 이 돈은 권양숙 여사가 개인 빚 청산과 자녀 유학비로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박연차-권양숙 간 돈이 오간 것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차용증 등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은 이 또한 개인 간의 금전 거래임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1기 검찰 수사진은 당시에 검찰 내부에서 명망있는 검찰들이었다. 몇 개월에 걸쳐 장기간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1기 검찰 수사진은 퇴임 이후 박연차와의 거래는 사적 거래라 수사할 내용이 없다고 보고 종결지었다.


노무현 재단, 사람사는 세상 사이트 : (클릭)

※ 노무현 재단의 슬로건은 "노무현은 지키지 못했지만, 노무현 정신만은 지키고 싶습니다"의 슬로건으로 기념관이나 교육,연구사업 나눔사업 및 회원참여 프로그램으로 봉사, 참여정부 정책총서 등을 발간하고 있다.



■ 대국민 망신 주기 언론플레이

 ≫ 1기 검찰 수사진의 수사가 종료되고, 수개월 후 2기 검찰 수사진이 꾸려졌다.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하였고 이인규는 이전 수사진의 수사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주변 인물들이 차례차례 소환당했고 일가족 역시 소환당했다. 소환은 한 번이 아니라 수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조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상황이 방송과 언론을 통해서 매일 매일 브리핑되는 가운데, 어쩐 일인지 검찰은 어떠한 액션도 하지 못한 채 3주 이상이나 지속되었다. 국내 모든 매체는 카메라를 봉하마을에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심지어 방송사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봉하마을을 촬영하기까지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저의 집은 감옥입니다."는 글을 남겼다. 모든 언론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였고 흡사 온 세상이 압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여론은 노 전 대통령에게 매우 불리하게 형성되었다. 2015년,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국정원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 내용을 과장해 흘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인규 전 중앙수사부장은 <경향신문>에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보낸 국가정보원은 대검찰청에 억대의 피아제 시계 뇌물 논란을 활용한 대국민 망신주기 언론 플레이를 제안하였고, 국정원 측이 자신들의 뜻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려 하자 검찰은 "수사권 침해"라고 반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검찰은 국정원 직원의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2015년에 2009년에 있던 일이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가 ‘촛불집회’ 등으로 궁지에 몰리자 검찰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의 분석이다. 결국 검찰도 국정원과 똑같은 충성 경쟁을 벌였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 盧 대통령 수사 두고 검찰과 국정원, ‘멱살잡이’까지 2015년 2월 27일 기사

관련기사 : [SNS] 이인규, 盧수사 폭로.. “공작정치의 끝” 2015년 2월 25일 기사 



■ 국정원의 여론 공작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국민장을 치루며 온 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국정원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인터넷 게시물 수천 개를 유포시키며 추모 분위기를 방해했다. 이후에도 국정원은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하는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생산, 유포했다. 국정원 직원이며 디씨인사이드에서 활동했던 닉네임 좌익효수(아이디 : chiwoo9300)는 인터넷에 지역감정 조장, 여성혐오, 차별주의적 정치관을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 위주로 피력[각주:1]했다. 그 중 하나를 가져오면,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등이다. 닉네임의 뜻은 좌파를 효수(능치처참)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사건으로 부적격자가 국정원 직원이었단 점에서 국격은 물론 국가기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관련기사 : 국정원 “놈현 큰 죄가 많았군요~”...서거 후 비하 댓글 수천개 추가 공개 2013년 6월 26일 기사



■ 노무현이 이명박 대통령께 보낸 편지

 ≫ 2008년 7,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기밀을 빼돌렸다며 봉하마을을 압수수색하라고 지시했다. 압수수색을 지시했던 추측되는 이유는 당시 한/미 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중점으로 진행중인 촛불시위 때문으로 추측된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대응 때 한마디로 "미국산은 위험하니 안된다" 였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바로 통과시켰던 문제다.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론돌리기 및 노무현 잠재우기 등으로 추정)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기록을 봉하마을로 가지고 내려갔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청와대에서 합의를 본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일을 국가 기밀을 빼돌렸다로 지시했다. 노무현은 왜 통치기록을 가져갔을까? 그것은 "민주주의 2.0" 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설한 토론 웹사이트였다. 이 사이트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모든 토론의 형식이나 진행, 시스템 등은 회원 참여에 의해 결정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정책 등을 실시간으로 국민들과 토론하길 원했다. "민주주의 2.0" 을 만들기 위한 서버 컴퓨터 5대를 봉하마을에 가져간 것이다. 이 서버 5대를 이명박 정부는 국가 기밀이라며 일침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노무현이 정권 퇴임 후, 시민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위해 만든 민주주의 2.0, 노대통령께서 서거하신 현재는 없다)


관련기사 : '민주주의 2.0' 문 열었다 2008년 9월 18일 기사




■ 그 외 노무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치지 않은 편지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썼지만 부치지 않았던 편지 1통과 검찰 수사 때 추가진술을 위해 준비했던 글 1편을 비롯한 미공개 글 2편이 공개됐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련기사 : 노무현이 MB에게 '부치지 않은 편지' 공개 2009년 10월 7일 기사

노 대통령의 서거, 편지에 대한 기록은 아래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내 마음속 대통령
10점


출처 : 분노에 찬 기사 검색 / 구글 검색 및 나무위키 조사, 노무현 관련 책, 팟빵 라디오 등 여러가지


 

관련글 : [날짜확보] 노무현이 서거하신 이유 중 하나, 친일파와 전쟁한 노무현, 친일파 나라를 속이다

[시사 및 리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해외반응

  1. 피력하다 : 생각하는 것을 털어놓고 말함. [본문으로]

+ Recent posts